[자카르타] 인도네시아 군박물관(Wisata Edukasi Satriamandal)에서 보는 인도네시아군 역사
올해 10월 5일은 인도네시아군 창설 7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인도네시아군 역사는 일본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인을 대상으로 군사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1942년, 자카르타에서 약 20km 떨어진 땅그랑에 ‘청년도장(靑年道場)’이라는 이름으로 지역민에게 게릴라전, 정보전 등을 가르치는 특수전 학교를 설립했으며, 이어서 1943년 10월 3일에 ‘향토방위의용군(郷土防衛義勇軍, PETA)’도 창설했습니다. 또한 간부 양성을 위해 자카르타 남부 약 60km 지점에 있는 보고르에 간부 학교인 ‘의용군연성대(義勇軍錬成隊)’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학력이 높은 인도네시아인을 장교로 양성했습니다. ‘의용군연성대’에서 훈련 받은 인도네시아인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500명 규모인 대단(大団)을 결성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직된 ‘향토방위의용군(PETA)’은 일본 패망 무렵에 자바 66개 대단, 발리 3개 대단 등 약 37,000명, 그리고 수마트라에도 약 20,000명에 달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 항복선언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18일에 독립준비위원회(PPKI)가 정부 기본 조직을 발표했습니다. 8월 22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향토방위의용군(PETA)’을 해산하고, 23일 날짜로 이들을 국민치안단(BKR)으로 규합했으며, 이어서 31일에는 수카르노와 모하마드 하타를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하는 인도네시아공화국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한편 네덜란드군과 영국군이 인도네시아에 진입하면서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한 대응 수단이 절실했던 수카르노 대통령은 1945년 10월 5일에 국민치안단을 국민치안군(TKR)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국민치안군이 바로 현재 인도네시아군 근간이 됐으며,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10월 5일이 인도네시아 국군의 날이 됐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10월 5일은 육군 창설일이고, 해군은 이보다 약 한 달 빠른 9월 10일, 해병대는 육군보다 한 달 늦은 11월 15일에 그리고 공군은 이듬해인 1946년 4월 9일에 창설됐습니다.
상단 사진은 인도네시아 국군박물관(Wisata Edukasi Satriamandal)이고, 하단 사진은 박물관 입장권이며 입장료는 1인 5000루피아로 한화로는 500원이 조금 되지 않는 금액입니다. 인도네시아 국군박물관은 인도네시아군 창건 28주년이 되던 1972년 10월 5일에 개관했으며, 박물관에는 인도네시아 독립과 관련된 인도네시아 군 관련 자료가 많습니다.
사진 속 건물은 1911년에 문을 연 호텔(Hotel Oranje)입니다. 이 호텔은 말레이시아 페낭 이스턴앤오리엔탈 호텔(Eastern & Oriental Hotel)을 설립한 아르메니아인 사르키즈 형제 중 장남인 마틴 샤르키즈(Martin Sarkies) 아들 루카스(Lucas Martin Sarkies)가 세운 호텔입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인도네시아를 점령했던 일본군은 해당 호텔 이름을 야마토 호텔(Hotel Yamato)로 바꾼 후에 일본군 본부로 사용했습니다. 일본이 패망한 뒤 식민지 탈환을 위해 돌아온 네덜란드군이 1945년 9월 19일 밤 9시에 해당 호텔에 네덜란드 국기를 게양했으나 다음 날 이를 보고 분개한 인도네시아인들이 호텔로 모였습니다. 인도네시아 대표단이 호텔을 방문하여 하기할 것을 요청했으나 협상이 결렬되면서 네덜란드 장교가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호텔로 난입한 인도네시아인들은 네덜란드 국기 파란색 부분을 찢어버린 후 다시 게양하며 ‘독립(Merdeka)’를 연호했습니다. 9월 20일에 발생한 ‘호텔 야마토 사건(Hotel Yamato Incident)’은 결국 수라바야 전투(Battle of Surabaya) 도화선이 됩니다. 해당 호텔은 사건 이후 호텔 므르데까(Hotel Merdeka)-L. M. S. Hotel이라는 이름을 거쳐 1969년에 마자빠힛 호텔(Hotel Majapahit)으로 바뀌었습니다. 1996년에 다시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마자빠힛 수라바야로 변경됐다가, 2006년에 현재 이름이자 1969년 이름인 마자빠힛 호텔로 다시 변경됐습니다.
야마토 호텔 사건 후 약 한 달이 지난 1945년 10월 27일에 수라바야에서 첫 번째 교전이 발발합니다. 이후 11월 20일까지 수라바야와 그 일대에 모인 인도네시아군 2만명과 각지에서 모인 민병대 12만명이 영국군 제5인도보병사단(5th Indian Infantry Division) 병력 25,000명과 교전을 벌였다. 3주에 걸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295명이 전사 및 실종됐지만 인도네시아군은 최소 6,300명에서 최대 15,000명까지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라바야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는 수라바야를 포기했으며, 이후 전투를 독립할 때까지 유격전으로 변경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라바야 전투가 가장 치열하여 인도네시아군 전사자가 가장 많았던 1945년 11월 10일을 ‘영웅의 날(Hari Pahlawan)’로 지정하여 기리고 있습니다.
1965년 9월 30일에 ‘인도네시아 공산당(Partai Komunis Indonesia, PKI)’은 육군 장성 6명과 기타 육군 장교를 살해하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 전신은 1914년 5월 9일 수라바야에서 창설된 ‘동인도사회민주연합(Indische Sociaal-Democratische Vereeniging, ISDV)’입니다. 네덜란드인 공산주의자 스네이블리트(Henk Sneevliet)가 만든 이 단체는 1920년 5월 23일 그 이름을 ‘인도네시아 공산주의자 연합(Persatuan Kommunist Hindia, PKH)’으로 변경했습니다. 이어서 1924년부터 정식으로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독립 이후 원내 제4당을 구성할 정도로 세력도 컸으나 해당 사건을 계기로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공산주의자로 간주된 사람들이 대량으로 살해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965년 3월 12일 날짜로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진압 과정에 정권을 장악한 수하르토 대통령은 1998년 권좌에서 물러날 때까지 31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