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역사와 사회

6.25전쟁과 필리핀, 역사를 잇는 우정과 기억

heliconia 2025. 6. 2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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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기습적으로 남침했으며, 3일 만인 6월 28일 서울을 점령했다. 국제연합(UN)은 6월 27일,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83호(Resolution 83)’를 채택했다. 결의안 제83호에는 (이번 전쟁은) 북한군이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공격한 행위임을 확인하고 즉각적으로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38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요청했으나 북한군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서 대한민국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긴급한 군사적 조치가 필요하며, 회원국들에게 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다라는 내용도 적시되어 있다.            

1949년 아세안에서 가장 먼저 한국과 정식 수교를 맺은 필리핀은 국제연합 요청을 받고 6.25 전쟁에 파병을 결정했다. 당시 필리핀 정부는 필리핀한국원정군(Philippine Expenditionary Force to Korea)을 창설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전투병을 보냈다. 필리핀한국원정군(PEFTOK)은 1950년 9월 15일에 미 수송선을 타고 마닐라항을 출발했다. 9월 19일 부산항에 도착한 후, 10월 1일 비행장 경비 임무를 시작으로 정전협정 이후인 1955년 5월까지 한국에 주둔했다. 필리핀한국원정군이 참여한 전투 중 가장 격렬했던 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4월 23일까지 벌어진 율동 전투다. 당시 필리핀한국원정군 제10대대 전투단(10th Battalion Combat Team)은 중공군 4만 명에 포위당해 본부인 미 제3보병사단 65연대와 통신이 끊겼다. 하지만 후퇴하지 않고 중공군 공세를 막아냈으며 그 결과 미 제3보병사단이 성공적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 중 제10대대 전투단 병사 15명이 전사했고 14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제10대대 전투단은 파이팅 필리피노(Fighting Fillipinos)로 불렸다. 

(좌)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50618500358, (우)https://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63241

오늘은 6.25 전쟁 발발 75주년이 되는 날이며, 작년은 한국과 필리핀 수교 75주년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기념하고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난 6월 18일에 우리금융미래재단은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필리핀 한국전 참전기념관(PEFTOK Korean War Memorial Hall)에서 필리핀 참전용사 후손 3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해당 장학금 수여식에는 한국전 참전용사와 장학생을 비롯해 이상화 주필리핀 대사, 필리핀 군 관계자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성현 우리웰스뱅크 법인장이 우리금융그룹을 대표해 장학생 30명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했으며,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루 뒤인 12일 자생의료재단 역시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필리핀 한국전 참전기념관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를 비롯한 가족들과 현지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의의료봉사를 실시했다. 신민식 자생의료재단 사회공헌위원장(잠실자생한방병원장)을 비롯한 자생한방병원 소속 한의사와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인력이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의료진은 참전용사 3명과 그 가족들, 그리고 지역주민 150여 명에게 침·부항 치료 등 다양한 한의치료를 제공했다. 근골격계 통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건강상담 등도 병행하여 필리핀 보건의료 상황 개선에 일조했다. 

해당 행사에는 한국전 참전용사 두 명이 장학금 수령자들과 참석했다. 지난  6월 6일, 70주년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기억과 평화에 대한 국가적 약속을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대통령은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나라와, 모두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전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더 큰 존경과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해 그들이 자부심, 존엄, 명예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6.25전쟁에 목숨과 젊음을 바친 노병들과 그 후손들에게도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7,420명에 달하는 필리핀한국원정군 중에서 필리핀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이들은 112명이었다..  

한강 작가는 스스로에게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고는 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유용하다. 퇴각하지 않고 율동 전투에서 자리를 지킨 필리핀 군인들, 그들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과 우리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남긴 유산을 이어받아 미래를 향해 가는 필리핀 젊은이들, 우리 모두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꿀 수 있으며, 죽은 자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를 살릴 수 있게 됐다. 

https://www.philembassy-seoul.com/news/phl-embassy-launches-book-dayo-stories-of-migration-in-celebration-of-75-years-of-phl-rok-diplomatic-relations

현재 한국에는 많은 필리핀인들이 일하며 살아가고 있고, 한국 내 필리핀 공동체 구성원 중 약 20%가 한국인과 결혼한 필리핀인들이다. 이처럼 두 나라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서로 삶에 깊이 스며들며, 새로운 가족과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2024년 12월 1일, 주한필리핀대사관은 한-필 수교 75주년을 기념해 《Dayò: Stories of Migration》를 출간했다. ‘Dayò’는 타갈로그어로 ‘외지인’ 또는 ‘방문자’를 뜻하며, 낯선 땅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이 겪는 여정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 책은 예술,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학계, IT,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 삶을 40편에 달하는 수필과 인터뷰로 담아내고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 관련 이야기 역시 책에 실려, 양국 관계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깊이를 보여준다.

주한필리핀대사 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Maria Theresa Dizon-De Vega)는 이 책을 두고 “양국 우정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6.25전쟁이 양국 현대적 동맹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면, 그 이후 이어진 이주와 교류는 두 나라의 관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어떻게 성숙하고 풍부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유된 노력이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에게 주는 의미, 그리고 공유하는 기억이 만들어내는 감사와 존경은, 무역협정이나 조약보다 더 깊은 양국 사이 우정을 증명한다. 이제 우리는 그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풍요롭고 평화로운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https://www.philembassy-seoul.com/news/phl-embassy-launches-book-dayo-stories-of-migration-in-celebration-of-75-years-of-phl-rok-diplomatic-relations
- https://globalnation.inquirer.net/272422/dayo-is-a-book-about-finding-home-between-philippines-and-korea
-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50618500358
- https://www.akomnews.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6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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