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인도네시아 커피 이야기

2024. 7. 13. 07:33인도네시아/음식과 문화

반응형

커피 원산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에티오피아 전설이 많이 인용된다. 칼디(Kaldi)라는 목동이 염소들이 작은 열매를 먹고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열매를 먹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열매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6~7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커피나무는 이윽고 예멘을 거쳐 아라비아반도 그리고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도 전해졌다. 기록상 첫 커피를 판매했던 곳은 1475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 문을 연 키바 한(KIva Han)이었다. 커피 인기와 함께 카페라는 공간은 1475년 콘스탄티노플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1615년, 베네치아에 도착한 커피를 두고 ‘사탄의 쓴 발명품(bitter invention of Satan)’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교황 클레멘스 8세(Pope Clement VIII)에게 커피에 대한 중재를 요청했고, 클레멘트 8세는 커피를 직접 마셔본 후 만족스러워하며 음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1645년에는 베네치아에 유럽 내 첫 카페가 등장했고, 1652년 런던, 1689년 파리, 1679년 함부르크, 1694년 라이프치히, 1721년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커피는 유럽 내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이후 철학자, 예술가 등이 모여든 카페는 사교와 예술을 공유하는 장소가 됐다.

한반도에서 ‘커피’라는 단어가 적힌 최초 기록은 철종 때인 1860년이다. 병인박해로 순교한 조선 천주교회 4대 교구장이던 베르뇌(Berneux) 주교가 1860년 3월 6일에 홍콩 소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리브와(Libois) 신부 앞으로 보낸 편지에
 “커피 20kg을 보내 달라.’라는 문장을 적었다. 1861년 3월 21일 바다를 통해 조선에 도착한 랑드르(Landre) 신부를 통해 커피를 잘 받았다는 베르뇌 신부가 쓴 이후 편지로 보아 적어도 1861년 중에 도착한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록은 고종이 아관파천 때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알려진 1896년 2월보다 36년이 앞서는 것이다. 베르뇌 신부는 1861년 9월에도 커피 25kg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고, 1863년 11월에는 50kg을 보내 달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베르뇌 신부 편지 다음으로 ‘커피’라는 단어는 1883년 1월 1일 개항한 제물포(현 인천항)에서 발견된 그해 8월 수출입일람표에서 등장한다. 이는 조선 커피 수입과 관련된 최초 기록이며, 아관파천보다 13년이나 앞선 것이다. 다시 말해 아관파천 이전에 커피를 수입할 정도로 커피 내수시장이 형성됐거나 최소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물포 개항 3년 후인 1886년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쓴 ‘조선, 교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180쪽에는 1884년 1월에 “언덕에 있는 곳(House of the Sleeping Waves)으로 올라가서 조선 최신 유행인 저녁 후 커피를 마셨다(We mounted again to the House of the Sleeping Waves to sip that lastest nouveauté in Korea, after-dinner coffee).”라는 내용이 있다. 1897년 독립신문에 정동 고르스카이키(Gorschalki)에서 판매하는 품목 중 자바 커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광고도 실려 있다.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은 갑신정변 때 외상을 입은 민영익을 수술했는데 이는 한반도 최초로 집도된 외과 수술이기도 했다. 알렌은 선교사로 왔다가 조선 최초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 설립에 기여했으며, 이후 조선 주재 미국 공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1908년에 출간한 <조선견문기(Things Korea)> 195쪽을 보면 궁궐로 왕진을 온 자신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옆을 지키던 신하들이 본인들을 위해 계속 차와 커피를 내놓았다(Later, in order to keep themselves in countenance, tea and coffee were added to these collations).라는 내용도 있다. 그가 조선에서 의사로 활동한 것은 1887년 이전까지이니 커피는 그 이전부터 왕실에서 손님 대접을 위해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놓고 볼 때 아관파천 이전부터 조선 왕실에서는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며, 로웰이 쓴 최신 유행(lastest nouveauté)’이라는 표현을 보면 왕실 이외 사람들 사이에서도 커피를 인지하거나 마시던 사람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926년 5월 1일 발행된 개벽 제69호를 보면 이성용(李星鎔), 이관용(李灌鎔) 양 박사와 기독교 청년학관의 독일어 교사 낭승익(浪承翼) 군은 남대문통(南大門通) 소광교(小廣橋) 부근에 경성 초유의 백림관(伯林館)이라는 독일식 다점(獨逸式茶店)을 열고 영업을 개시하였다 한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성용 박사는 1923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세균학으로, 이관용 박사는 1923년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낭승익은 일제가 1911년 11월 1일 관립한성외국어학교 독일어 교사였다. 독일어에 능통한 이들은 독일식 커피를 파는 조선 최초 카페를 열어, 이후 1928년 9월에 영화감독 이경손이 문을 연 ‘카카듀’와 함께 조선 지식인과 예술인이 모여 커피와 사교를 즐기는 공간을 제공했다. 한편 작가 이상 역시 1930년대 ‘제비’, ‘카페 쓰루’, ‘무기’ 등 다방을 열어 문인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로 시작하는 이상이 쓴 소설 <날개>에도 “나는 한 박스에 아무도 없는 것과 마주 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 잔 커피가 즐거운가 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 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티룸들의 그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라는 문장이 등장하기도 한다. 커피를 좋아하던 천재 이상은 경영 둔재였는지 아끼던 금홍이를 데리고 카페를 열었으나 금홍이도, 카페도 모두 놓치고 만다.   

한국 이외에도 커피를 사랑하는 문인과 예술가는 많았다.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주로 종교 음악을 작곡했지만 단골 카페 주인 부탁과 함께 커피를 사랑하는 자기 마음을 담아 작품번호 211번 <커피 칸타타>를 만들었다. <커피 칸타타>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딸에게 커피는 몸에 해로우니 제발 마시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커피를 예찬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커피 칸타타> 중 명곡으로 평가받는 “아! 커피 맛은 정말 기막히지(Ei! wie schmeckt der Coffee sube)”라는 노래이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커피를 좋아했던 빈센트 반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로 이사 후 자주 가던 포룸광장(Place du Forum)에 있는 카페 드 라 가르(Café de la Gare)에서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커피와 식사를 자주 하던 카페를 그린 작품이 바로 <밤의 카페 테라스(Terrace of a café at night)>이다. 한편 커피 애호가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는 출항 전 마놀린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는 산티아고를 묘사하는 문장과 상어 떼 습격으로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데운 커피를 권하는 소년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커피가 등장한다. 인생 1/3을 쿠바에서 보낸 헤밍웨이는 쿠바 크리스털 마운틴(Crystal Mountain) 커피를 좋아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커피 생산국 순위에 아세안 국가 중 두 나라는 그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은 브라질이지만 두 번째로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는 국가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1980년대부터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까지 연 20~30%씩 증산했다. 네 번째로 많은 커피 원두를 재배하는 인도네시아에는 제한된 생산량과 높은 가격으로 유명한 루왁커피(Kopi Luwak)가 있다. 1696년 네덜란드는 바타비아(현 자카르타)로 커피나무를 들여왔으며, 1711년에는 수확한 커피를 처음으로 유럽에 수출하기도 했다. 이후 커피 산업이 성장한 인도네시아에는 수마트라 만델링(Sumatra Mandheling), 발리 블루 문(Bali Blue Moon), 술라웨시 또라자(Sulawesi Toraja), 모카 자바 블렌드(Mocha Java Blend) 이외에도 여러 유명한 원두가 생산되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예술가 중 기다크 알니자르(Ghidaq Al-Nizar)는 커피를 사용하여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알니자르는 액상 커피만이 아니라 커피 찌꺼기, 말린 잎, 양초, 못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어 낸다. 2020년 한 인터뷰를 보면 카푸치노와 라떼에 매료된 작가는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에 지루함을 느끼다가 직접 커피와 라떼 아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품 활동은 2008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자신이 그린 다양한 작품을 인스타그램(Coffeetopia)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커피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에 한국 카페 문화를 알리려는 시도도 현재 진행되고 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은 7월 13일과 14일, 양일 동안 자카르타 센트럴 파크 몰(Central Park Mall) 뜨리베까 광장(Tribeca Park)에서 ‘K-커피 문화와 예술(K-Coffee Culture & Arts)’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유명 바리스타들 시연을 비롯하여 라떼 예술 경연대회, 로봇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 시음회 등 여러 행사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한국식 커피를 알릴 계획이다. 특히 K-커피 드립백 만들기, K-믹스커피 챌린지(믹스커피로 탑 쌓기), K-믹스커피 투호 던지기 등 한국 믹스 커피와 전통놀이를 결합한 체험 행사도 준비했다. 한국식 믹스 커피는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기에 한국 드라마를 즐겨 시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이번 행사는 한국농수산물식품유통공사(aT) 자카르타지사가 주최하는 ‘2024 K-Food Fair’ 행사 일환으로 진행되며 한국 먹거리와 문화 체험 기회도 같이 제공한다. 또한 한국관광공사 자카르타지사는 행사장에서 할랄 한식 및 한국 관광 홍보에도 나설 예정이다.
 
 
참고자료
- https://sipofculture.com/2020/11/22/full-interview-with-ghidaq-al-nizar/
- https://historiccafesroute.com/fifteen-paintings-of-coffee-lovers/
- https://webzine.nfm.go.kr/2021/06/02/%EC%9A%B0%EB%A6%AC%EB%82%98%EB%9D%BC-%EC%BB%A4%ED%94%BC%EC%9D%98-%EB%B3%80%EC%B2%9C%EC%82%AC/
-
https://id.korean-culture.org/ko

- https://archive.org/details/lowell-choson-the-land-of-the-morning-calm-full-view/page/180/mode/2up?q=coffee
- https://archive.org/details/thingskoreancoll00allerich/page/194/mode/2up?view=theater&q=coffee
- https://db.history.go.kr/common/imageViewer.do?levelId=ma_013_0680_0150
https://www.vincentvangogh.org/cafe-at-night.jsp#google_vignette
- https://trynewcoffee.com/7-best-indonesian-coffee-beans-best-indonesian-coffee-brands/
- https://www.coffeekilimanjaro.com/education/the-history-of-coffee-in-indonesia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