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성탄절 및 새해 음식

 

교황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 가톨릭신자는 모두 13억7800만명이며, 이 가운데 브라질에 가장 많은 1억8000만명에 달하는 가톨릭 신자가 있다. 필리핀은 멕시코에 이어 가톨릭 신자가 세 번째로 많은 나라지만 아시아에서는 가장 많은 가톨릭 신자가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필리핀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필리핀 인구 약 1억866만명 가운데 78.8%에 해당하는 8564만명이 가톨릭 신자이다. 스페인 왕실 후원을 받은 마젤란이 1512년 세부에 상륙한 이후 전파된 가톨릭은 필리핀 대부분 지역에서 주류 종교로 자리를 잡았다. 필리핀을 17개 권역으로 나눠서 보면 비콜(Bicol Region)이 93.5%로 지역 내 가톨릭 신자 비중이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동비사야스(Eastern Visayas) 92.3% 중앙비사야스(Central Visayas) 90.5%이었고 수도권 지역(National Capital Region)은 88.4%를 기록했다. 또 세부 만다우에(Mandaue)처럼 인구 36만명 중 95.2%가 가톨릭 신자인 도시도 있으며, 세부시(94.7%), 타클로반(93.5%), 라푸라푸(93.2%), 나보타스(91.6%) 등 인구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곳도 많다. 그렇기에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에서 성탄절은 중요한 날 가운데 하나이다.

레촌

성탄절이라는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 필리핀 사람들은 다양한 준비를 한다. 그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필리핀 가정에서는 성탄절을 맞아 입맛을 돋우는 전채 요리부터 후식까지 다양한 음식을 준비한다. 지역에 따라 그리고 각자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지만 빠지지 않는 음식들이 있다. 그러한 음식 중 하나로 돼지통구이인 레촌(Lechon)이라는 음식이 있다. 레촌은 필리핀에서 잔치나 축제에 빠지지 않는 음식으로 바삭한 껍질이 일품인 요리이다. 여러 향신료를 돼지 안에 넣고 천천히 숯불에 구워 내는 레촌은 성탄절과 같은 경사스러운 자리에 항상 등장한다. 이에 많은 필리핀인들은 레촌이 성탄절이나 새해를 축하할 때 꼭 필요한 요리라고 말한다. 성탄절부터 새해까지 이어지는 모임에 카스타냐스(Castañas)라는 간식이 나오기도 한다. 카스타냐스는 구운 밤으로 성탄절 무렵에 필리핀 거리와 시장에서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토마토를 주양념으로 염소고기나 소고기로 만드는 갈비찜과 유사한  칼데레타(Caldereta)도 이 시기에 볼 수 있다. 칼테라타는 갈비찜과 양념 맛은 다르지만 부드러운 고기와 함께 감자, 당근 등이 들어간다는 비슷한 점도 있다. 

스페인 식민지 기간 동안 필리핀에 자리를 잡은 상징적인 문화 중 하나가 가톨릭이라면 마닐라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은 필리핀에 녹아든 중국 문화 흔적을 보여준다. 동그란 과일 모양이 부(富)를 상징한다고 믿는 중국계 영향으로 필리핀 사람들은 신년에 동그란 과일 12개를 식탁에 올려두거나 물방울무늬가 있는 옷을 1월 1일에 입는다. 이러한 상차림은 필리핀에서 부를 축적한 중국계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중국 문화 영향을 받아 신년행사에 판싯(Pancit)이라는 면 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여러 종류가 있는 판싯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판싯 비혼(Pancit Bihon)으로 얇은 쌀 면에 당근, 양배추, 녹두, 고기 등을 함께 볶아서 내놓는다. 판싯은 채소와 함께 어우러지는 색감도 좋지만 대량으로 준비하기에도 편하기에 다가오는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새해에는 판싯 대신 전분으로 만든 면을 주재료로 하는 소탕혼(Sotanhon)을 먹기도 한다. 소탕혼과 같은 면 요리는 먹고 장수(長壽)하라는 뜻이 담겨 있어 신년에 내놓는 음식이기도 하다. 필리핀에서는 면을 끊어 먹지 않으며 장수를 기원하는 중국처럼 새해에 국수를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비빙카

또한 이 시기에는 찹쌀로 만드는 푸토 범봉(Puto Bumbong)이나 역시 찹쌀로 만드는 비빙카(Bibingka)도 맛보기에 좋다. 비빙카는 찰쌀가루에 코코넛 밀크, 계란, 설탕 등을 넣고 바나나잎으로 덮은 점토로 만든 냄비에서 조리한다. 성탄절부터 새해까지 이 요리들은 필리핀 가정에 필수적이다. 식탁 위에 올라간 이런 요리들을 함께 먹으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서로 느끼면서 성탄절과 함께 다가오는 새해를 함께 맞이한다. 한편 이렇게 의미 있는 명절인 성탄절과 신년에 먹는 요리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필리핀 매체는 중요한 성탄절과 새해를 맞아 새로운 음식을 권하고 있다. 필리핀 매체가 새로운 시도로 추천한 요리는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김밥, 삼겹살, 잡채, 한국식 치킨, 짜장면, 소불고기, 떡볶이, 계란말이, 떡갈비 그리고 호떡 등 한국 음식이다. 해당 매체는 레촌 대신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가족과 교분을 나누며, 또 전분으로 만든 면과 여러 재료를 섞어서 먹는 필리핀 요리 소탕혼(Sotanghon) 대신 비슷한 한국 요리인 잡채를 추천했하고 있다. 매체는 잡채를 한국식 소탕혼으로 소개하면서 이 음식을 먹어봤다면 성탄절이나 새해에 왜 먹기 좋은 음식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칼데라타

개인적으로 매체에서 언급한 갈비찜과 호떡 또한 필리핀 요리인 칼데라타와 비빙카 대신 명절에 가족과 함께 먹기에 손색이 없는 요리로 여겨진다. 칼데라타나 갈비찜 모두 고기가 부드러우면서도 맛이 좋고, 비빙카와 호떡은 주재료가 다르기에 식감은 다르지만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후식으로 적절하다. 실제 한국 음식과 필리핀 음식을 조합하여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한 필리핀 사람들은 이러한 시도가 신선하면서도 맛있다는 평을 했다. 매체는 또한 성탄절과 새해 술자리에 떡볶이와 소주를 권했다. 필리핀 명절을 풍성하게 보내는 방법으로 떡볶이와 소주 조합을 상상하니 저절로 격세지감이 든다. 필리핀에서 성탄절부터 신년까지는 가족이 함께 모여 풍요, 건강, 장수를 기원하는 자리이다. 이러한 의미 있는 시간에 한국 요리가 필리핀 사람들 식탁에 오르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요리와 함께 전통적인 의미로 명절을 충실히 보내고 있다. 다시 말해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더욱 다채로운 명절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아직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필리핀 매체가 이러한 기사가 작성했다는 점에서 필리핀 내 한식 보급 및 확산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참고자료
- 《COSMOPOLITAN PHILIPPINES》 (2022. 12. 19). 10 *Delicious* Korean Dishes That Deserve A Spot In Your Noche Buena Feast, https://www.cosmo.ph/kloka/korean-food/korean-dishes-noche-buena-a5002-20221219
- 《The Smart Local》 (2023. 9. 29). 17 Traditional Filipino Christmas Foods That Every Filipino Should’ve Had At Least Once, https://thesmartlocal.ph/filipino-christmas-foods/ 
- 《Urban Bliss Life》 (2023. 12. 25). Filipino New Year's Eve Food and Traditions, https://urbanblisslife.com/filipino-new-years-eve-food-and-traditions/
- 《Diyaryo Milenyo News》 (2024. 12. 23). Top 5 Filipino Best Cuisine for Noche Buena and New Year for 2024-2025, https://diyaryomilenyonews.com/2024/12/23/top-5-filipino-best-cuisine-for-noche-buena-and-new-year-for-2024-2025/
- 필리핀 통계청 홈페이지, https://psa.gov.ph/content/religious-affiliation-philippines-2020-census-population-and-hou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