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성탄절을 밝히는 두 개의 별

2025. 12. 22. 09:07필리핀/음식과 문화

우리가 같이 사는 지구에는 성탄절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많은 나라들이 있다. 그러한 나라들 가운데에서 필리핀은 매우 독특한 성탄절을 보내고 있는 나라이다. 필리핀 성탄절은 매년 9월에 시작하여, 다음 해 1월 첫째 주현절(Feast of the Three Kings)이 되어야 끝이 난다. 필리핀에서 성탄절은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시기이다. 

필리핀 성탄절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버 먼스(Ber months)’이다. 필리핀에서는 9월, 10월, 11월 그리고 12월을 ‘버 먼스’로 부르고 있다. 이 단어는 9월(September), 10월(October), 11월(November), 그리고 12월(December)이 모두 ‘ber’로 끝나는 데서 유래했다. ‘버 먼스’가 시작되는 9월 1일부터 필리핀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화려한 성탄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필리핀 성탄절이 유독 긴 이유에 대해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점이 이러한 독특한 문화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필리핀이 가운데 78.8%가 가톨릭 신자이다. 또한 2021년 기준 교황청 통계에 따르면 필리핀은 브라질과 멕시코 다음으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강력한 가톨릭 신앙을 배경으로 하는 필리핀에서는 독특하고 다채로운 크리스마스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파롤(Parol)’, ‘심방 가비(Simbang Gabi)’, ‘노체 부에나(Noche Buena)’, ‘미디아 노체(Media Noche)’ 그리고 ‘에피파니(Epiphany)’와 같은 전통들은 필리핀인들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전통이기도 하다. 

사진 상단에 있는 ‘파롤’은 별 모양 등불로 필리핀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장식물이다. ‘파롤’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알린 베들레헴의 별을 상징한다. 9월 ‘버 먼스’가 시작되면 필리핀 전역의 가정과 거리에 ‘파롤’이 걸려 온 나라를 환하게 밝힌다. 필리핀어로 ‘저녁 미사(Night Mass)’는 뜻하는 말인 ‘심방 가비’도 필리핀 크리스마스 특징을 잘 보여주는 행사 중 하나이다. ‘심방 가비’는 필리핀식 가톨릭 전통으로, 매년 12월 16일부터 24일까지 9일에 걸쳐 진행된다. ‘심방 가비’ 마지막 날은 ‘미사 데 갈로(Misa de Gallo)’라고 하며, 12월 24일에 진행되는 특별한 미사이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성탄절은 12월 25일에 끝나지 않는다. 12월 31일 자정에 맞이하는 ‘미디아 노체’는 또 다른 성대한 잔치이다. 이어서 동방박사 3인이 예수가 태어난 곳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에피파니’, 우리말로 주님 공현 대축일인 1월 6일이 되어야 필리핀 사람들이 인정하는 크리스마스가 끝난다.

역사, 문화, 그리고 종교적 의미를 지닌 필리핀 성탄절 기간은 필리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필리핀 통계에 따르면 필리핀인들은 성탄절 기간에 사용한 비용 중 45%를 ‘노체 부에나’ 음식 준비에, 그리고 48%를 선물 구매에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7%를 크리스마스 관련 장식품에 지출했다. 또한 83%에 달하는 필리핀인들은 가족과 친척에게 주기 위한 성탄절 선물 구매에 지출을 우선시하고 있다. 

특히
선물 구매’라는 부분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필리핀 성탄절 관련 선물 시장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한국 상품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러한 거대한 소비 시장에 한국 대중문화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니스프리, 라네즈 등 한국 화장품들이 성탄절 기간 중 선물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 화장품은 세련된 포장과 실용성으로 타인에게 주기 좋은 선물이 됐으며, 동시에 필리핀 소비자들은 한국 연예인들로 인해 이를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라 한국적인 생활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성탄절에 한국 음식을 선물하는 것 역시 기간 중 음식을 나누는 필리핀 전통과도 잘 부합된다. 한국 라면, DIY 떡볶이 키트 같은 제품들은 한국 드라마 장면을 직접 재현하고 싶은 필리핀 소비자들 기대에 부합하는 상품이다. 이러한 상품들은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기에 재미있으면서도 쉬운 선택지이다. 

한국 의류 역시 필리핀 성탄절 시장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패션에 영감을 받은 필리핀 소비자들이 이와 유사한 제품을 성탄절 선물로 선택하고 있다. 또한 벤치(BENCH)와 펜숍(PENSHOPPE) 등 필리핀 의류 회사들은 엔하이픈, 김수현, 차은우와 라이즈 등을 자사 모델로 기용하거나 현재 기용 중에 있다. 의류 회사들은 필리핀에서도 인기 많은 한국 아이돌이나 배우 등을 통해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또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는 다양한 영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특히 필리핀은 아세안에서 적극적으로 한국 대중문화를 수용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이에 대한 관심은 한국을 찾는 관광객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KTO)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인 수는 2023년 대비 50.7% 증가하여 51만 명을 넘어서면서, 아세안 국가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25년 1월부터 10월까지 50만 명 이상이 한국을 방문했으며, 연말까지는 작년보다 더 많은 필리핀인들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파롤이 베들레헴의 별을 상징하듯이, 한국 스타와 한국 상품들은 이제 필리핀 성탄절을 함께 밝히는 새로운 별이 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현상을 넘어, 한국 대중문화가 필리핀 종교, 경제, 가족 문화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버 먼스'가 계속되는 한, 한국 대중문화는 필리핀 성탄절을 장식하는 문화적, 경제적 자산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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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art Local》 (2023. 9. 22). 14 Christmas Traditions That Only Filipinos Can Relate To, https://thesmartlocal.ph/filipino-christmas-tra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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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star》 (2023. 12. 22). Christmas economics, https://www.philstar.com/business/2023/12/22/2320521/christmas-economics
- 《Inquirer》 (2024. 12. 17). Pinoys urged to practice responsible spending during Christmas season, https://business.inquirer.net/496955/pinoys-urged-to-practice-responsible-spending-during-christmas- season
- 《Philippine News Agency》 (2025. 12. 8). UP DILIMAN CHRISTMAS 2025 INSTALLATION, https://www.pna.gov.ph/photos/8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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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ing-Interactive》 (2025. 12. 11). Filipino Christmas 2025: How brands are spreading joy, heart, and festive cheer, https://www.marketing-interactive.com/filipino-christmas-2025-how-brands-are-spreading-joy-heart-and- festive-ch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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