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6. 17:19ㆍ필리핀/뉴스와 통계
지난 2026년 3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이 필리핀을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한국과 필리핀 수교 77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단순한 외교 일정을 넘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필리핀은 한국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우방이다. 6·25 전쟁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 자유를 함께 지켜낸 혈맹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세안(ASEAN) 국가 중 1949년 한국과 가장 먼저 수교를 맺은 ‘첫 번째 친구’이기도 하다.
마닐라 빌라모어 공군기지에 도착한 이 대통령 내외는 의장대 사열과 예포 발사 속에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현지 유력 일간지인 《필리핀 스타(The Philippine Star)》와 《GMA Network》 등은 이번 방문에 대대적으로 다루며 높은 관심을 표했다. 현지 언론은 한국의 독보적인 첨단 기술력과 필리핀의 풍부한 천연자원 및 젊은 인적 자원이 결합해 만들어낼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문 첫날 오후, 말라카냥 대통령궁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이번 회담의 핵심 성과로 양국 관계를 최고 단계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는 양국이 단순한 우방을 넘어 안보, 경제, 에너지, 문화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밀히 공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구체적인 실질 협력 방안도 도출되었다. 양국 정상은 조선, 원자력 발전, 인공지능(AI) 등 미래 신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를 약속했으며, 특정 방산물자 조달을 위한 시행약정 개정을 포함해 총 10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언론발표에서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토대로 통상·인프라·방산 등 전통적 협력 분야를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조선·원전·AI 등 신성장 분야까지 협력의 지평을 넓히기로 뜻을 모았다”라고 밝히며 양국 경제 협력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방문 이튿날인 4일, 이 대통령은 마지막 일정으로 더마닐라 호텔에서 열린 필리핀 동포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필리핀 전역에서 모인 한인회 등 동포단체 관계자, 경제인 등 다양한 동포 사회 구성원 약 200여 명이 참석하여 이 대통령 내외를 뜨겁게 환영했다. 이 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수교 기념일인 3월 3일에 맞춰 필리핀을 방문하게 된 깊은 인연을 강조하며, 단결된 동포사회에 감사를 표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재외국민 보호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임을 강조하며,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우리 교민들의 안전을 위한 각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구체적인 치안 현안도 직접 언급했다. 특히 한국인 3명을 살해하고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도 텔레그램을 통해 한국으로 마약을 유통해 온 중범죄자를 지목하며, 정상회담에서 해당 범죄자에 대한 ‘범죄자 임시인도’를 강력히 요청했음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마르코스 대통령으로부터 조속한 검토와 시행을 약속받았다”며, “반드시 한국 땅에서 엄중한 수사와 처벌을 받게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대통령은 2016년 필리핀 경찰에 의해 희생된 고(故) 지익주 씨 사건을 언급하며 교민들의 해묵은 아픔을 어루만졌다. 지익주 씨 사건은 당시 현직 경찰들이 경찰서 내에서 민간인을 납치·살해하고 시신을 화장해 유기한 반인륜적 범죄로, 범인들이 살해 후에도 몸값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여 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사건이다. 이 대통령은 주범 중 한 명이 여전히 도주 중인 상황을 지적하며,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조속한 검거를 요청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고 설명했다.

2019년 10월, 필리핀 국립경찰청 본청에서 열렸던 지익주 씨의 추모 행사는 지금도 교민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통신원을 비롯한 한인들은 당시 범죄 현장이었던 경찰청 주차장에 모여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눈물로 염원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가족의 고통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간담회에 참석한 고인의 부인 최경진 씨는 “도주한 범인이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라고 호소하며, 대사관 내에 교민들의 법적 조력을 전담할 수 있는 부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낯선 타국에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교민들에게 이러한 실질적인 제도 마련은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이다. 최경진 씨 건의처럼 대사관 또는 현지 변호사로부터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는 것이 교민들 중론이다.
한편,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필리핀 내 한국 문화의 압도적인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한국 요리가 필리핀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가 됐다”며 필리핀 내 한국 문화 인기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필리핀 통신원으로서 목격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이제 한국 대중문화는 필리핀에서 단순히 드라마나 K-팝을 소비하는 ‘보는 한류’가 아니라 ‘생활 속 한류’로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졸리비(Jollibee)와 같은 필리핀 거대 기업이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를 인수하고, 현지 편의점 매대마다 한국식 컵밥과 김밥이 매진되는 풍경은 한류가 이미 필리핀 국민의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준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교민은 “대통령 방문으로 한국인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 뿌듯하다”는 소회를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외교적 수사가 일시적인 환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내실 있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체결된 수많은 양해각서(MOU)가 실제 사업으로 구체화되어야 하며, 특히 교민들이 건의한 안전 대책과 법률 지원 역시 속도감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성과가 교민들의 삶에도 작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이번 국빈 방문의 가치가 한층 더 빛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 중 하나다. 최첨단 기술과 강력한 문화 역량을 갖춘 한국과 인적 자원 및 시장 잠재력이 있는 필리핀이 결합한다면, 양국은 상호보완적인 ‘전략적 동반자’로서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3월, 마닐라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확인한 양국의 우정은 이제 77년의 세월을 넘어 미래의 새로운 70년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이 협력의 물결이 공공을 넘어 민간 교류로 폭넓게 확산될 때, 양국은 요동치는 세계정세 속에서도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참고자료
- 《Philstar》 (2026. 3. 1). Welcoming the state visit of President Lee Jae Myung, https://www.philstar.com/opinion/2026/03/01/2511158/welcoming-state-visit-president-lee-jae-myung
- 《GMA Network》(2026. 3. 3). South Korean President Lee Jae Myung arrives in PH, https://www.gmanetwork.com/news/topstories/nation/978560/south-korean-president-lee-jae-myung-arrives-in-ph/story/
- 《Philippine News Agency》 (2026. 3. 3). Marcos meets South Korean President Lee in Malacañang, https://www.pna.gov.ph/articles/1270225
- 《Philippine Daily Inquirer》 (2026. 3. 5). Lee asks Marcos for temporary transfer of jailed Korean drug kingpin, https://globalnation.inquirer.net/312441/lee-asks-marcos-for-temporary-transfer-of-jailed-korean-drug-king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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