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20. 17:46ㆍ필리핀/음식과 문화
작년 말 한국 문학계는 별 하나를 잃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통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솔직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따뜻한 위로를 건넸던 백세희 작가가 2025년 10월, 향년 35세로 세상을 떠났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극심한 고통 속에서 ‘떡볶이’라는 음식을 갈구하는 모순적인 생존 본능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저자는 기분부전장애와 불안장애를 겪으며 전문의와 상담한 기록을 담담히 풀어내어 수많은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문학이 건네는 정서적 위로가 필리핀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면, 이제 그 온기는 책장을 넘어 ‘음식’이라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고(故) 백세희 작가는 저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통해 떡볶이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 삶을 회복하는 커다란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떡볶이는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고통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작가의 마음, 즉 한국적 정서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상징적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필리핀에서 영업 중인 많은 한국 식당에서는 떡볶이를 판매하고 있어, 떡볶이를 필리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지난 10년 사이 필리핀 외식 시장에서 한국 음식 관련해서 찾아볼 수 있는 변화 중 하나가 떡볶이이기도 하다. 과거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던 떡볶이는 이제 필리핀 도시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떡볶이 뷔페를 표방하는 두끼떡볶이는 2021년 3월 필리핀에 첫 진출한 이후, 마닐라 등 주요 도시에서 매장 20개 이상을 운영 중에 있다. 1999년 창업한 신전떡볶이 역시 필리핀에 진출하여 떡볶이를 알리고 있다.
신전떡볶이 진출은 필리핀 내 한국 음식이 단순 유행을 넘어 ‘브랜드 전문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에도 진출한 두끼떡볶이가 필리핀 사람들이 좋아하는 뷔페를 앞세워서 진출했다면, 신전떡볶이는 중독성 있는 매운맛을 앞세워 한국 분식을 필리핀에 전파하고 있다. 이는 필리핀 외식 시장에서 한국 음식이 단순히 드라마 속 배경에 머물지 않고, 필리핀인들 일상과 함께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신전떡볶이 매운맛은 얼얼한 후추와 카레 향이 어우러지는 자극적이고 강한 맛이 특징이다. 매운맛을 즐기는 필리핀 사람들은 신전떡볶이에 대해 ‘후추 향이 강한 매운맛’이 독특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매운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 역시 흥미로운 부분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 소비자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접한 것처럼 떡볶이 양념에 튀김이나 어묵 등을 찍어 먹는 것도 즐기고 있다. 신전떡볶이에 대해 ‘떡이 매우 부드럽고 쫄깃하다(Really soft and chewy)’, ‘치즈는 필수(Cheese is a must)’, ‘정통 한국식 매운맛(Authentic Korean spicy)’과 긍정적인 표현과 함께 ‘로제(Rosé)’ 열풍에 힘입어 부드러운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물론 해결할 과제도 남아 있다. 배달 플랫폼 그랩(Grab)과 푸드판다(Foodpanda) 후기를 통해 신전떡볶이에 대해 필리핀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만도 읽을 수 있다. 단품 기준 250~350페소(약 6~8천 원)에 달하는 떡볶이 가격은 그러한 불만 중 하나이다. 필리핀 일반 직장인 한 끼 평균 예산이 150~200페소를 고려할 때, 신전떡볶이는 일상적인 간식보다는 ‘특별 외식’이다. 이러한 가격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비빔밥, 치킨, 핫도그 등을 조합한 콤보 세트를 출시 등 전략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현재, 필리핀에서 한국 문화는 더 이상 유행에 민감한 일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국 드라마와 음악으로 다져진 친밀감은 이제 식문화로 전이됐으며, 한식은 필리핀인들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며 ‘낯선 외국 음식’이라는 심리적 거리감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이제 한식 브랜드들이 직면한 가장 큰 숙제는 ‘고가(Premium)’라는 이미지 뒤에 가격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한식 브랜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현지 서민 경제 수준에 맞춘 실속형 음식 구성 개발이 필수적이다. 또한 현지 식재료를 적절히 활용해 단가를 맞추는 현지화 전략도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음식에 담긴 위로와 연대라는 한국적 정서를 마케팅에 녹여낸다면 한식은 필리핀 외식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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