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0. 10:09ㆍ필리핀/역사와 사회

4월 9일은 필리핀 공휴일 중 하나인 ‘용사의 날(Araw ng Kagitingan)’이다. ‘용사의 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탄 전투(Battle of Bataan) 희생자를 기리는 날로 전쟁 중 숨진 많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날이기도 하다. 바탄 전투는 일본이 필리핀을 침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투 중 하나였다. 당시 일본은 진주만 공습 10시간 후인 1941년 12월 8일 필리핀에 상륙하여 4개 방면에서 미-필리핀군을 압박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1942년 3월 11일 호주로 퇴각하자 일본에 저항하던 미-필리핀군은 1942년 4월 9일 일본군에 항복했다.
투항한 필리핀군 65,000여명과 미군 10,000여명은 카파스(Capas)에 있는 오도넬 수용소(Camp O'Donnell)까지 약 100km 이상을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바탄 죽음의 행군(Bataan Death March) 동안 포로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물과 음식 없이 며칠 동안을 걸어야만 했다. 그 결과 포로들은 탈수증, 열사병 그리고 부상 악화 등으로 대열에서 낙오되기 시작했으며 일본군은 이러한 포로들을 살해했다. 기록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그 과정에서 필리핀인이 최소 5,000명에서 최대 18,000명, 미국인이 최소 500명에서 최대 650명이 사망했다.

당초 일본은 필리핀은 점령하여 남태평양 일대와 아세안 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활용하고자 했다. 바탄 전투에서 승리한 일본은 필리핀 일대를 완전 점령했으나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인적, 물적 그리고 시간적인 손해를 봤다. 이는 이후 뉴기니와 솔로몬 점령 계획에 차질을 빚었고 그 결과 미군은 반격할 수 있는 약 5개월의 시간을 벌었다. 여하튼 바탄 죽음의 행진은 일본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였다. 독일군 및 기타 추축국에 생포된 연합군 포로 사망률이 3%인 것에 반해 일본군에 생포된 전쟁 포로 사망률이 30% 이상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은 바탄 전투 2년 후인 1943년 11월 17일 취역한 인디펜던스급 경항공모함 중 하나에 USS 바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비극을 잊지 않고자 했다. USS 바탄은 사실상 일본 해군이 몰락한 전투인 필리핀해 해전(Battle of the Philippine Sea)에 투입됐으며 이후에는 오키나와 해전(the Battle of Okinawa)에 참여했다. USS 바탄은 6.25전쟁에도 투입되어 주로 서해에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현재도 미국은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5번함 이름을 바탄으로 명명하여 운용 중에 있고, 올해로 35회째를 맞는 ‘기념 마라톤 대회(35th Bataan Memorial Death March)’를 통해서도 바탄에서 벌어진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바탄의 참상을 다룬 영화들도 제작됐었다. 먼저 MGM에서 제작하여 1943년 개봉한 영화 <Cry Havoc>은 바탄 전투 중 야전병원에서 일하던 미육군 간호장교 2명과 마닐라에서 탈출한 11명의 민간인들이 겪는 고초를 그렸다. 치료제가 부족하여 말라리아로 사망한 군인이나 일본군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등 전쟁의 비참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 등이 등장하며 영화는 바탄 죽음의 행진 장면으로 끝이 난다. 같은 해에 개봉한 영화 역시 일본군 공세에 맞서 다리를 폭파하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목숨을 걸고 다리를 폭파하여 일본군 공세를 늦추지만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망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1945년 5월 31일에 개봉한 <Back to Bataan>이라는 영화는 미군 장교 지휘로 필리핀 군이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바탄 죽음의 행진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극중 수용소에서 풀려나는 포로들이 실제 바탄 죽음의 행진의 생존자들이었다. 미군 대령 역할로 존 웨인, 필리핀 대위역로는 앤서니 퀸이 출연했으며 일본군 대령 역할로는 안필립이 출연했다. 국내에는 1956년 4월 5일에 개봉한 <I Was An American Spy>라는 영화도 바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수입 개봉명은 <마니라의 마타하리>였고 현재통용제명은 <나는 미국 스파이였다>이다. 바탄 죽음의 행진에서 미군 남편을 잃은 주인공은 일본군을 쏴죽이고 탈출하여 일본 장교들을 위한 사교 클럽을 연다. 주인공은 미군과 필리핀군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하다가 일본군에 발각되어 투옥되고 일본 장교인 아리토(안필립 분)에게 물고문을 받다가 미군에 구출된다.

앞서 언급한 일본인 장교 역할을 한 안필립 배우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남긴 유일한 한국계 배우이다. 안필립은 흥사단을 설립한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으로 미국에서 출생했다. 1934년 <A Scream in the Night>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 안필립은 영어를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출연이 거절되기도 했다. 안필립은 1937년작인 <Daughter of Shanghai>에서 정부 요원 역할로 등장했으며 최초의 중국계 미국 배우인 애나 메이 웡(Anna May Wong)과 함께 미국 유성 영화에 첫 아시아계 연인으로 출연하는 기록도 남겼다. 그는 1984년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에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남길 정도로 영화 산업에도 기여한 바가 크지만 그게 출연하던 시절에는 주로 중국인이나 일본인 배역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이 악역인 일본군 장교 역할로 등장했던 상황에서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극장용 영화는 아니지만 1986년에 방영된 드라마인 <Women of Valor>도 바탄 죽음의 행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잔 서랜든이 간호장교 역할을 맡았으며 전쟁 이후 살아남은 그녀가 일본군의 전쟁 범죄에 대해 증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초를 겪은 간호장교들이 너무나 건강하다는 점과 1940년대식 영어가 아니라 1980년대식 영어를 사용했다는 점 등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극적인 연출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전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한편 바탄 죽음의 행진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일본은 말레이시아에서도 ‘죽음의 행진(Sandakan Death March)’ 을 벌였다. 일본은 1942년 구 북보르네오(현 사바)를 점령하고 산다칸에 포로 수용소를 만들었다.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1945년 6월부터 3단계에 걸쳐 포로들을 260km 떨어진 라나우로 이송하는 작전인 일명 ‘산다칸-라나우 죽음의 행진(Sandakan-Ranau Death March)’을 시행했다. 그 결과 포로들은 더운 날씨에 물, 음식, 의료 지원 등이 없는 상태에서 정글을 통과하는 장거리 이동을 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구타, 고문 그리고 처형이 자행됐다.
2,400여명의 포로 중 99% 이상이 사망했으며 탈출한 2명을 포함하여 6명 만이 살아 남았을 정도로 산다칸 죽음의 행진은 필리핀 바탄에서 발생한 사건보다 더욱 잔혹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사건 중 하나이며 과거 포로 수용소가 있던 자리에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 한편 일본이 북보르네오(현 사바)를 점령한 3년 동안 북보르네오 인구의 약 16%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s://www.kmdb.or.kr/history/leaflet/3719
- https://origins.osu.edu/milestones/april-2017-bataan-death-march
- https://www.history.com/topics/world-war-ii/bataan-death-march
- https://www.nytimes.com/1986/11/21/arts/women-of-valor-on-cbs-about-prisoners-of-war.html
- https://catalog.afi.com/Catalog/moviedetails/24318
- https://www.imdb.com/title/tt0043666/
- https://bataanmarch.com/
- https://www.anthonyhillbooks.com/billyoration.html
-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53899584_DARK_TOURISM_HATE_AND_RECONCILIATION_THE_SANDAKAN_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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