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illejos] 라몬 막사이사이 박물관(Museo ni Ramon Magsaysay)

2024. 4. 13. 01:00필리핀/역사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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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막사이사이 박물관(Museo ni Ramon Magsaysay)

사진은 필리핀 잠발레스 카스틸레호스(Castillejos, Zambales)에 자리하고 있는 라몬 막사이사이 박물관(Museo ni Ramon Magsaysay)이다. 해당 박물관에는 필리핀 7대 대통령이었던 라몬 델 피에로 막사이사이(Ramon del Fierro Magsaysay, 이하 막사이사이)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1990년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원 건물을 철거하고 1999년 같은 자리에 현재와 같은 건물을 신축했다.

필리핀
7대 대통령 라몬 막사이사이는 1907년 8월 31일 인근 이바(Iba) 출신으로 7 살이 되던 1914년 가족과 함께 이바에서 60km 정도 떨어진 카스틸레호스로 이사했다. 가족이 이사를 하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 실직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막사이사이 아버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했으나 미국인 교장의 청탁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실직하게 된다. 미국인 교장은 막사이사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아들이 유급되면 안 된다고 부탁했으나 막사이사이 아버지는 규정대로 교장의 아들의 유급을 결정했고 그 결과 교사직을 상실한다.  

박물관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전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개방했으며 현재는 입장 시간이 종전보다 1시간 짧아졌다. 입장료는 따로 없지만 기부금은 받고 있으며, 문화해설사가 상기 대기하고 있어 막사이사이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박물관 내 유물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버지 실직으로 고학하던 막사이사이는 20살이 되던 1927년 필리핀 대학(University of the Philippines)에 입학하여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1928년 호세 리잘 컬리지(José Rizal College) 상과대학에서 학업을 지속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필리핀 육군 제31보병사단(31st Infantry Division of the Philippine Army) 소속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바탄 전투(Battle of Bataan) 패전으로 사단이 와해되자 비정규군을 조직하여 종전 때까지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막사이사이는 1946년 처음으로 하원의원이 됐으며 1949년에 재선됐다. 두 번의 하원의원 임기 내내 하원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50년 9월 국방장관으로 취임하여 공산반군(Hukbong Bayan Laban sa Hapon)과 맞섰다. 이후 공산반국에 대한 자신의 일관된 정책 집행을 위해 1953년 2월 28일 국방장관을 사임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1953년 11월 11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1954년 1월 1일 7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막사이사이는 취임식에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전통 의상인 바롱 따갈로그(Barong Tagalog)를 입고 취임선서를 했으며 이후 취임하는 필리핀 대통령들은 모두 바롱 따갈로그를 입고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막사이사이는 취임식 당일 대통령 집무실인 말라카냥궁(Palasyo ng Malakanyang)을 대중에게 개방하는 정책을 시행했으며, 이후 말라카냥궁은 주말에만 일반에게 개방됐다. 그는 또한 선거 공약에 따라 조선시대 신문고에 해당하는 대통령실 산하 고충 처리위원회(Presidential Complaints and Action Committee)를 설립하여 1년에 6만건에 달하는 고충을 접수하여 그 가운데 3만건 이상은 위원회가 직접 처리했으며, 기타 안건은 정부 기관들로 이첩하는 등 정책을 펼쳤다. 청렴하기로 소문났던 막사이사이는 가족과 측근에게 어떠한 혜택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도로, 다리 및 건물의 건축도 허용하지 않았다. 공무로 공군기를 이용한 경우에도 자신의 개인 명의의 수표를 발행하여 관련 비용을 지불할 정도였다.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상하원 대부분을 차지한 부유층은 그의 정책 집행에 협조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집행하려던 토지 개혁이나 복지 혜택 등은 대부분 축소되거나 사장되고 말았다.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재향군인회 행사와 대학 졸업식 등에 참석하기 위해 1957년 3월 16일 마닐라를 떠났다. 3월 17일 새벽 1시 전용기인 피나투보산(Mount Pinatubo)에 탑승하여 이륙했으나 항공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전용기는 세부 마눙갈 산(Mount Manunggal)에 추락했으며 탑승자 56명 중 막사이사이 대통령을 포함한 36명이 사망했다고 보도됐지만 실제 탑승자는 25명이었고 생존자는 기자 단 한 명이었다. 막사이사이 행정부는 필리핀에서 가장 깨끗하고 부패가 없었으며 종종 '필리핀의 황금기(Golden Years)'로 언급된다. 필리핀 군 역시 당대가 전성기였으며 무역과 산업을 비롯하여 문화,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필리핀의 위상을 높였던 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바랑가이 사무실(Pamahalaang Barangay Ng San Jose)

라몬 막사이사이 사후 록펠러 형제 기금(Rockefeller Brothers Fund)은 막사이사이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라몬 막사이사이상(Ramon Magsaysay Awards)'을 제정했다. 1958년부터 현재까지 막사이사이 대통령의 생일인 8월 31일에 시상식이 열리며, 한국인 중 받은 사람은 총 17명이다. 2000년대 들어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한국인은 2002년 법륜, 2005년 윤혜란, 2006년 박원순, 2007년 김선태 그리고 2019년 김종기까지 모두 5명이다. 

가장 최근에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김종기는 재단법인 푸른나무재단의 설립자이자 명예 이사장이다. 김종기 명예 이사장은 학교폭력 예방과 비폭력 문화 확산에 힘을 써왔고, 푸른나무재단은 국제연합(UN)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 비정부기구이다. 명예 이사장 김종기는 전라남도 목포 출신으로 성균관대 졸업 후 삼성전자 홍콩 법인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베이징 출장 중이던 1995년 6월 8일 고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상급생 5명의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투신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학교는 사건에 대해 쉬쉬했고, 가해 학생 부모들도 자신들의 자식을 챙기는 데에 급급했다. 한국을 떠나려고도 했던 김종기 이사장은 아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학교폭력 예방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사직했다. 교육부 공무원을 포함한 정부의 무관심에도 굴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 나갔으며 결국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어 냈다. 한편 가수 성시경은 자살한 김종기 이사장의 아들인 김대현과 반포중학교 친구였으며 그 인연으로 2001년부터 푸른나무재단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바랑가이 사무실(Pamahalaang Barangay Ng San Jose) 옆에 자리하고 있는 필리핀에서 시작된 필리핀 독립교회(Iglesia Filipina independiente)

한편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이 공부했던 호세 리잘 컬리지(José Rizal College)는 필리핀 최초의 공인회계사(Vicente Fabella)가 1919년에 설립한 학교다. 개교 당시에는 파 이스턴 컬리지(Far Eastern College)였으며 1922년 교명을 호세 리잘 컬리지로 변경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설립자가 일본을 상대로 무장 투장을 벌였으며 그로 인해 학교 문을 닫기도 했다. 호세 리잘 컬리지는 1945년 말에 다시 문을 열었고 1950년 현재 자리인 만달루용으로 이전했다. 필리핀 고등교육위원회(Commission on Higher Education)는 2020년 호세 리잘 컬리지를 대학(University)으로 승인했으며, 이에 따라 현재 교명은 호세 리잘 대학(José Rizal Universit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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