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2. 05:58ㆍ필리핀/뉴스와 통계

필리핀 공교육 현장에서 한국어 위상이 단순한 ‘제2외국어’를 넘어 필리핀 교육 개혁을 견인하는 성공적인 협력 사례이자 세계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양국 교육 협력은 이제 언어 교육을 넘어, 심각한 학습 빈곤에 직면한 필리핀 교육 제도를 재건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2026년 3월 4일, 필리핀 정치 심장부인 말라카냥 궁에서는 양국 교육 협력에 있어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행사가 열렸다. 한국 대통령 필리핀 국빈 방문에 맞춰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한국 교육부와 필리핀 교육부(DepEd)는 ‘공립학교 내 한국어 교육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공식 갱신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함께 한 자리에서 체결된 이번 협약은 소니 앙가라(Sonny Angara) 필리핀 교육부 장관 주도로 이루어졌다. 앙가라 장관은 이번 파트너십이 단순한 언어 교환 이상의 의미를 지님을 명확히 했다. 그는 “이번 갱신은 단순히 새로운 언어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우리 학생과 교사들에게 세계로 나아가는 기회의 문을 여는 것”이라며, 한국어 교육의 제도적 정착과 문화 교류를 통한 양국 우호 증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양국은 교육과정 전문화, 한국어 교육 전문가 파견, 현지 교사 역량 강화, 그리고 최신 교수 학습 자료 제공 등 전방위적인 협력을 이어갈 예정이다.
필리핀 학생들이 한국어 학습에 열광하는 배경에는 문화적 동경을 넘어선 ‘현실적인 수요’와 관련되어 있다. 필리핀 관광부(DOT)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필리핀을 찾은 한국인은 약 125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가운데 가장 많았다. 비록 전년 대비 수치는 다소 감소했으나, 한국은 2010년 이래(2021~2022년 제외)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은 필리핀 관광 산업의 최대 소비층으로, 이들이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이에 따라 현지 호텔, 리조트, 항공사 및 서비스 산업 전반에서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인력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이다. 필리핀 학생들에게 한국어는 단순히 성적을 위한 과목이 아니라, 졸업 후 관광업 분야 취업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필리핀 교육당국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적극 도입한 것도 이러한 요구와 일정 부분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공교육 현장에 한국어가 정식으로 도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인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레오노르 브리오네스(Leonor Briones) 교육부 장관은 2009년부터 시행된 ‘제2외국어 특별 프로그램(SPFL)’ 일환으로 한국어를 도입했다. 2017년 6월 21일 체결된 첫 양해각서는 필리핀 수도권 내 10개 공립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시범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에 이어 주요 외국어 대열에 합류한 한국어는 도입 초기부터 학생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4-2025학년도 기준, 한국어 프로그램의 규모는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현재 필리핀 전역 13개 지역 69개 공립 중등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수강생 수는 4,810명에 달한다. 또한,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필리핀 현지 교사 168명이 공식 훈련 기관인 주필리핀 한국문화원(KCC) 지원 아래 전문 강사 교육을 이수하며 전문성을 키워왔다.
이러한 한국어 교육 확산 배경 중에는 필리핀이 직면한 심각한 교육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 10세 아동 중 간단한 문장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학습 빈곤(Learning Poverty)’ 비율이 무려 9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팬데믹 기간 장기화된 학교 폐쇄로 인해 기초 학습 능력이 결여된 아동 비율이 70%에서 90% 이상으로 급증하며 필리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위기 속에서 필리핀 교육계는 한국 사례를 단순한 ‘교육 재건’ 이정표로 삼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들은 사설을 통해 “K-콘텐츠가 세계를 제패한 배경에는 정부와 민관이 협력해 인재를 체계적으로 길러낸 ‘국가적 우수성 전략’이 있었다”라고 분석하며, 이를 필리핀 공교육에 이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한국어 교육 확대는 단순히 취업을 위한 언어 습득을 넘어, 한국 특유의 ‘교육을 통한 국가 발전’과 ‘인적 자원 육성 정책’을 필리핀 공교육에 수혈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양국 우호 증진과 필리핀 공교육 개선을 위한 한국어 수업 확대는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양국 사이 오래된 교육 협력이 결실을 본 결과물이다. 2017년 10개교에서 시작된 작은 씨앗은 이제 2026년 필리핀 전역으로 퍼져나가 공교육 개혁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압도적인 수의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실질적인 시장 수요가 뒷받침되면서, 한국어 교육은 필리핀 청년들의 경제적 자립과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적인 교두보가 되고 있다. 금번 양해각서 갱신이 필리핀 학습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일조하고, 동시에 양국 우호 관계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자료
- 《INQUIRER.net》 (2017. 8. 29). Korean language to be taught in public high schools, https://globalnation.inquirer.net/158419/korean-language-taught-public-high-schools
- 《INQUIRER.net》 (2023. 1. 27). The learning crisis and K-drama, https://opinion.inquirer.net/160627/the-learning-crisis-and-k-drama
- 《Manila Bulletin》 (2026. 3. 4). DepEd renews partnership with South Korea to expand Korean language program in public high schools, https://mb.com.ph/2026/03/04/deped-renews-partnership-with-south-korea-to-expand-korean-language-program-in-public-high-schools-
- 《GMA Network》 (2026. 3. 4). DepEd, South Korea renew partnership to expand Korean language in public schools, https://www.gmanetwork.com/news/topstories/nation/978677/deped-south-korea-partnership-language-schools/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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