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갑질과 온라인 혐오, 왜곡된 인정욕구가 낳은 슬픈 방어기제

2026. 5. 24. 15:57한국/잡동사니

얼마 전 카페 오늘의 바다에 들러 사장님과 우연히 악셀 호네트(Axel Honneth) 저작인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 』에 등장하는 개념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가 정립한 개념을 적극 수용하여 자아 실현과정을 설명했다. 미드는 인간 자아를 주체적 자아인 ‘I’와 객체적 자아인 ‘ME’로 나누고, 우리 자아는 두 자아가 화해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호네트는 자아 형성에 대한 미드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더 나아가 ‘사회적 인정’에 대한 부분을 고찰했다. 호네트는 ‘I’와 ‘ME’가 서로 반응하여 자아를 형성하는 데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들, 즉 개인과 타인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서로 인정하는 관계 속에서 개인은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러지 못한 관계 속에서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를 형성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무가치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사회적으로) 괜찮은 인간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될 수 없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몸부림치고, 이를 눈치채는 타인에 대해 증오를 느끼기도 한다. 호네트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어 하는 인정(Recognition) 욕구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호네트는 자아 정체성 형성을 위해 사회로부터 받아야 하는 인정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정의했다. 

세 가지 단계 중 제1단계인 사랑(Love)은 가족, 연인, 친구 사이의 정서적 지지와 신체적 필요 충족을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자기 신뢰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며, 제2단계인 권리(Rights)는 국가와 법적 공동체로부터 동등한 권리를 가진 도덕적 인격체로 인정받아 자기 존중을 확립하는 단계이다. 마지막 제3단계인 연대(Solidarity) 직장이나 가치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능력과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음으로써 자기 가치를 정립하는 과정으로, 호네트는 이 세 가지 형태가 학대나 배제, 폄하 등으로 훼손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무시가 결국 사회 갈등의 핵심 원인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호네트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무시(Disrespect)’를 당할 때 분노와 수치심, 모욕감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정적 경험은 단순히 경제적인 굶주림이나 물질적인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를 넘어, 나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존엄성 훼손을 극복하려는 강력한 저항의 핵심 동기로 작용한다. 따라서 호네트가 주창한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문법이라는 개념은 역사 속 수많은 사회적 충돌과 대중 운동을 자원이나 권력을 더 차지하기 위한 단순한 이익 다툼 혹은 이른바 ‘밥그릇 싸움’으로 평가절하하는 시각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대신에 이는 억압받고 소외당한 주체들이 사회적 무시로 인해 깊게 상처 입은 자아 정체성을 당당히 회복하고, 붕괴된 가치를 바로잡으며, 공동체 내에서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사회적 지위를 승인받기 위해 치열하게 벌이는 일종의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투쟁으로 사회적 갈등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했다.             

자아 형성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시 방영 중이던 JTBC 주말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4월 18일 첫 방송 이후 대중의 깊은 공감을 얻으며 막을 내린 이 드라마는 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뒤처져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처절한 몸부림, 그리고 그런 그를 품어 안으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질투하는 친구들과 관계, 그 이외에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호네트가 언급한 ‘인정투쟁’이라는 화두를 완벽하게 현실 속으로 끌어들였다.

극 중 인물들 서사는 호네트가 말한 인정 3단계와 그것이 무너진 이후 회복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잘나가는 ‘8인회 친구들 앞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향해, 똑같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를 지지하는 연인 변은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호네트가 말한 사랑’을 목도할 수 있다. 주인공 역시 이를 통해 스스로를 더욱 믿을 수 있게 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극 중 주인공은 친척과 영화사 등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누려야 할 권리를 무시당한다. 이처럼 제2단계인 ‘권리’가 침해당하면서 그의 '자기 존중'은 심각하게 상처를 받는다. 제2단계인 ‘권리’가 무시 당하는 경우 ‘자기 존중’이 확립될 수 없다. 그러나 주인공 황동만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작가와 감독으로서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결국 그가 쓴 극본이 인정을 받고 영화 제작에 돌입하는 과정, 즉 공동체 내에서 능력과 기여를 인정받는 ‘연대를 통해 주인공은 비로소 ‘자기 가치’를 확인한다. 아울러 시상식에서 ‘삼촌, 검색된다’라는 말로 존재 증명을 세상에 알린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몸부림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성과주의 사회의 현실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현대 사회는 ‘돈’, ‘성공’, ‘시장성’과 같은 외면적 가치를 인간에 대한 평가지표로 삼으면서,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외면적 성취를 곧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와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지게 되며, 이는 결국 외면적 가치의 결핍이 내면적 가치의 붕괴로 이어지는 현상 속에서 고통받게 된다. 예컨대 취업 준비생이나 사회적 소수자가 일상에서 겪는 극심한 무가치함은 단순히 물질적인 빈곤에 대한 아쉬움을 넘어, 사회가 요구하는 외면적 성취를 증명하지 못했으니 나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라며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는 처절한 자기 부정의 모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가치 전도 현상은 타인과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정서적 안전망마저 스스로 파괴하도록 만든다.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이들이 여전히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내면적 가치를 인정해 주려 분투할지라도, 정작 당사자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격차라는 외면적 기준에 집착하여 연대하고자 하는 손길을 밀어내고 스스로를 고립되기를 자처하면서 파편화된 개인이 되어 버린다. 

미드와 호네트의 연구가 밝혀냈듯, 인간은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 반드시 타인이라는 거울, 즉 상호주관적인 관계망이 필요하다. 홀로 온전한 내면의 가치를 지키려 애써도, 정작 사회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시, 폄하, 배제 등으로 가득하다면 개인의 내면적 정체성은 이를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이나 돌봄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낮잡아 보일 때, 당사자들이 정서적으로 깊은 무가치함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과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무가치함이란,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지 못하면서 내면에 있는 자아가 붕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느끼는 극심한 무가치함은 내면을 갉아먹는 고통을 유발하고, 이는 자아 붕괴를 막기 위한 ‘분노와 공격성’이라는 방어기제를 외부로 작동시키기도 한다. 자신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과 공포를 주면서 자신의 영향력과 존재감을 증명하려는 행동은 결국 왜곡된 인정투쟁에 불과하다. 우리는 일상 속의 갑질, 온라인 혐오, 타인에 대한 과도한 분노 표출 등 이러한 현상을 매일 목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처럼 결핍된 약자에게 자기혐오를 투사하는 ‘동족 혐오’를, 자신보다 우월한 강자에게는 시기와 질투에 가득 찬 뒤틀린 ‘적대감’을 표출하면서, 비참한 자아를 감추기 위해 외부를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3세대 대표 철학자인 호네트의 ‘인정투쟁이론은  스승인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과 포스트구조주의자 푸코의 권력 이론’을 유기적으로 통합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철학에 커다란 의의를 남겼다. 우선 그는 하버마스의 이론이 지나치게 제도화된 언어적 합리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일상 현실에서 시민들이 체감하는 소외나 억압 같은 ‘갈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으며, 동시에 푸코는 사회를 단순한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 관계로만 보고 억압에 저항하는 투쟁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네트가 제시한 대안이 바로 인정 개념이다. 그는 인간이 사회 안에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적·도덕적 욕구에 주목하여, 하버마스와 푸코 이론을 하나로 묶어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처절한 몸부림부터 현대 사회의 뒤틀린 혐오 현상까지,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은 결국 단순한 이익 다툼이 아니다. 그것은 무시와 모욕에 맞서 “나의 존재와 존엄을 인정하라”고 외치는 치열한 도덕적 투쟁임을 호네트의 이론은 우리에게 선명하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시적 차원에서는 개인이 시장 경쟁에서 뒤처지더라도 법적 존엄성과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기본권과 소수자 보호 제도를 강화하여
‘자기 존중’이 가능한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나아가 돌봄이나 가사 노동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고 개인이 소속감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여 사회적 ‘연대를 복원해야 한다. 특히 얼 쇼리스가 희망의 인문학에서 강조했듯, 소외된 이들이 무력감에서 벗어나 공적인 삶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를 사유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미시적으로는 가정과 학교에서 타인을 향한 분노와 혐오가 사실은 인정 결핍에서 비롯된 왜곡된 방어기제라는 점을 일깨워 주는 교육과 성찰 기회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특히 나와 타인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인문학 교육의 활성화가 시급하다.

반응형